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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학예사/예상 문제

[준학예사] 한국미술사 예상 문제 - 최종(2)

by UDDT 2025. 2. 6.

 6.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에 대해 쓰시오.

 

진경산수화의
개념 및 발단
개념
진경산수화 : 우리나라에 실재하는 명산명천을 소재로 다룬 산수화. 진경 혹은 동국 진경이라 함
사회·문화적
배경
상공업이 발달하고 경제적으로 여유로워지면서 여행 문화가 유행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지도 제작과
기행 문학이 발달
사상적 배경
실학의 유입, 민족적 자의식이 상승하였으며 화가들 또한 자신의 사상을 자유롭게 표현하고자 함
미술사적 배경
중국의 남종화법이 본격적으로 유행. 이를 한국적으로 재해석하였으며,
서양화법이 도입되기 시작하여 개성이 강한 진경산수화풍 형성
전개 과정
고려 시대부터 조선 중기까지 이어진 실경산수화의 전통을 이어받아 조선 후기동안 진경산수화라는
이름으로 크게 성행하면서 우리나라 회화 사상 가장 독자적이고 한국적인 산수화풍을 형성
진경산수화의
표현 특징
  • 기본적으로 남종화법을 바탕으로 함. 엄격한 형식의 제약 없이 소박하고 담백한 감각을 가짐(우리 민족의 생활상, 미의식)
  • 북종화법의 선묘법 + 남종화법의 필묵법 > 안정되고 여유로운 구도, 개성적인 필묵법 및 준법을 운용
- 필묵법 : 적묵법, 묵찰법, 편필법
- 준법 : 수직준(겸재준), 상악준, 쇄찰준, 묵찰준
진경산수화의
독자성
  • 중국 중심의 관념 산수화에서 탈피. 우리나라의 산천을 보고 그리는 새로운 한국적 화풍의 전통을 마련
  • 한국의 자연주의 + 도가적 사상 결합. 산수를 치밀하게 관찰한 후 대담한 생략과 변형을 통해 실경을 역동적으로 재해석
  • 종래의 실경산수화에서 확장된 개념. 실제 풍경 뿐 아니라 경치의 본질과 작가의 감흥까지 진솔하게 표현

 7. 조선 후기 민화에 대해 쓰시오.

 

1) 개념과 발단

① 일본 미술 평론가 야나기 무네요시가 처음 사용한 용어, 일반 민중들이 생활 관습에 따라 제작한 실용적인 민예 그림을 일컬음

② 조선 후기 정치·경제·사회적인 변동으로 인해 신분 질서가 느슨해지면서 민중들의 미적 정서와 기호에 맞는 그림이 등장

③ 농업 생산성이 증대되고 수공업이 발전하면서 시장 경제 확대 > 그림을 제작하여 사고 파는 미술 시장이 발전

2) 표현 특징(조형성)

① 일반 민중 제작(익명성), 일정한 형태와 색채 양식의 양식화된 형식

② 실용적인 목적 또는 특정 가치를 기원하는 주술적인 목적

③ 원색을 활용한 진채를 구사. 색상의 대비를 강조하며 감각적 욕구 해소

④ 익살스럽고 소박하며 도안적인 형태 구사.(장식성, 반복성, 상징성, 도상성을 띰)

⑤ 주제와 관련된 도상을 모두 한 화면에 배치하여 대담하고도 파격적인 구성.(다시점이나 역원근법에 따른 복합성, 정면성을 특징)

3) 독자성

① 우리 생활 풍습이나 관습과 밀착되어 자주적으로 발전, 한국인의 정서가 내재됨

② 민족 정서를 공유하여 유대감 증대, 우리의 미의식이나 소망을 감각적으로 표출한 진정한 의미의 민족화

③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환경을 반영하고 있어 우리 민족의 소망과 상상력을 볼 수 있음.

4) 종류 : 화조화, 어해와, 작호도, 영모화 등

일월오봉도 : <일월오봉도 병풍>, 19세기

5) 민화에 등장하는 소재의 상징성

사슴 : 장수, 왕권 / 모란 : 부귀영화 / 화병 : 평안함 / 원앙, 기러기 : 부부의 금술 / 까치 : 기쁜 소식, 백성 / 소나무 : 신년, 장수 / 바위 : 장수 /

일월오봉도 : 왕권, 태평성대 / 십장생도 : 불로장생, 무병장수 / 책가도 : 학문, 지식 / 수박, 석류, 포도 : 다산 / 호랑이 : 벽사수호, 탐관오리 등

6) 제목과 상징성

우리 선조는 말과 글로 덕담을 하기도 했지만, 그림으로 덕담을 대신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그림은 보는 그림이 아니라 읽는 그림이다.

 8. 조선 말기 미술의 특징에 대해 쓰시오. (김정희, 허련, 창신파 - 김수철, 장승업)

 

19세기 말 조선의 정세는 매우 혼란한 시기였다. 부정부패가 만연해지면서 민정이 크게 흔들렸고, 통상수교 거부 정책으로 서양과 일본에 의한 사건사고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구본신참을 바탕으로 자주적인 개혁을 꾀하였으나 실패하고, 결국 을사늑약과 주권 침탈을 피할 수 없었다. 이러한 혼란스러운 상황은 복고주의 이어진다. 김정희파를 필두로 복고적 성향의 남종문인화가 유행하게 된다. 이들은 중국의 남종화풍을 모방하여 그림을 그렸다.

추사 김정희는 남종문인화 지상주의를 추구하며, 문자향과 서권기를 중시했다. 시서화 일치 사상에 입각한 문인의 서예론을 주장했고, 그림에 선비의 사의적 정신을 담고자 했다. <세한도>는 그가 제주도로 유배 갔을 때 의리를 잃지 않고 찾아와준 제자 이상직에 대한 고마움에 대한 그림이다. 푸른 소나무와 잣나무는 이상직의 충절을 상징하며 갈필로 묘사되었고, 집은 역원근법으로 그려져 다시점적이다. 소치 허련은 <방완당산수도>에서 원 말 4대가인 예찬의 그림을 모방했다. 수면을 따라 흐르는 시원한 공간감과 평행 2단구도는 그 영향이다.

시기적으로 서양화법이 유행하면서 창신파가 새로운 경향의 이색화법을 시도하기도 한다. 김수철을 필두로 맑고 투명한 담채가 돋보이는 회화를 구사한다. 대상을 간략하게 묘사하고 담채와 발묵법을 적극 구사하여 '솔이지법'이라는 화법을 구축하기도 했다. 더 나아가 장승업은 문기 어린 사의적 화풍보다는 기교 위주의 기량으로 <기명절지도>를 그려냈다. 과장되고 강인한 형태의 필묵법을 사용했으며, 그가 그린 매화 그림은 안중식과 조석진에게 계승되며 근대 화단의 기틀을 마련하게 된다.

8. 1928년 조직된 '녹향회'는 서울에서 조직된 미술단체로 그들의 작품은 각기 비법적 특색을 가지고 표현 취향을 달리하여 미술계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당대의 화가와 작품의 특징을 서술하시오.

오지호는 도쿄 미술대학에서 수학하고, 1931년 귀국하여 녹향회에 가입했다. 그는 사실주의 화법과 인상주의 화법을 고루 익혔다. 1935년 무렵 프랑스의 인상파 화법에 대해 탐구하였고, 한국 자연환경에 적용할 수 있는 인상주의에 대해 연구했다. 한국의 아름다운 풍광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밝은 외광 묘사와 인상주의적 기법의 회화여야한다고 믿고 이를 일관되게 발전시켰다. 인상주의의 분할 묘법을 이용해 서정적인 화풍을 제작하였으며, 암청색과 회청색이 주를 이뤘다. 오지호는 인상주의 화론을 활용하면 한국의 풍광을 제대로 표현하는 민족회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1930년대 향토색 논의가 활발하던 때 오지호는 <처의 상>을 통해 인물에서도 이러한 서정성을 잘 드러내고자 했다. 흰색 저고리, 옥색 치마, 빨간 옷고름 등은 당시 한국 여성을 대변하는 색으로, 화면의 뒤 대부분이 붉은 색을 이루고 있어 얼굴의 살결이 더욱 도드라지며 옷고름과 치마 곳곳에 적용된 분할묘법이 눈에 띤다.

<남향집>은 인상주의적 색채를 진일보 시킨 작품으로, 그림자 부분을 검정색을 사용하지 않고 청색과 보라색의 터치로 나타내 음영이 밝게 느껴진다. 청명한 하늘과 함께 공기의 투명함도 같이 표현해 인상주의의 완벽한 한국화가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9. 현대 화가인 김환기에 대해 시기적으로 구분하여 서술하시오.

 

서울 시기(1937~1956)
  •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시기. 입체파적인 화면 분할을 바탕으로 '신사실주의' 그룹을 창설하며 '모던 아트' 형성에 많은 영향
  • 광복과 한국 전쟁을 거친 시기. 부산 피난 중 해군 종군 화가로 피난 시절을 묘사한 작품. 기하학적인 화면 분할이 두드러지는 작품 또한 다수 남김
  • 1950년대부터는 산, 매화, 달, 항아리, 나목 등 한국적인 소재를 사용한 추상 경향을 보임
* 대표작품 : <론도>, <피란 열차>
파리 시기(1956~1959)
  • 자신의 위치와 예술의 본질에 대해 관심을 가진 후 1956년 파리로 유학
  • 추상화 경향을 발전시키면서 자신의 예술적 본질에 대해 몰두. 한국적 소재를 상징적 방식으로 활용
  • 청자의 비색은 단색조의 바탕이 되며 생명의 장으로 상징, 산과 강 등의 풍경은 원형으로 함축.
매화와 나목은 면으로 분할
  • "예술에는 노래가 담겨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시기
* 대표작품 : <항아리>, <영원의 노래>
서울 귀국 시기(1959~1963)
  • 파리에서 유럽의 미술 속에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그림을 배운 이후 귀국
  • 더욱 정제되고 고양된 절제와 직관적 표출로서 성숙한 화면을 구상
뉴욕 시기(1963~1974)
  • 뉴욕 이주 후 다양한 화면 구성과 재료, 기법 실험들로 풍부한 예술 행로
  • 점을 통해 우주적 근본, 보편적인 것에 대한 질문을 표현한 <점화> 시리즈 제작. 한국적인 소재로 암시적인 색과
점으로만 나타나는 형이상학을 보여줌
* 대표작품 : <별>,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론도>는 주제가 같은 상태로 여러 번 되풀이 되는 형식의 음악으로, 그랜드 피아노 혹은 첼로와 같은 악기의 형태를 원용하여 중첩적으로 추상화한 구성을 선보였다. <피란열차>는 한국 전쟁 당시 종군화가로 일하면서 그린 대표작으로 기차의 윗부분까지 피란민으로 가득 찬 모습이다. 전쟁 당시의 긴급한 상황을 보여준다. 사실적 화풍이 아닌 함축적인 도형들로 단순화시켜 표현한 이 작품은 푸른색과 붉은색의 대비가 어딘지 모르게 경쾌한 느낌을 준다. 슬픔과 실의가 느껴지는 전쟁의 표현과는 달리 '삶의 희망'이라는 의미를 담은 것으로 평가된다. <영원의 노래>는 산수, 학, 매화, 분청사기, 백자 항아리 등의 모티브를 가지고 한국적이면서도 추상적인 경향이 결합된 특징을 보여준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뉴욕 시기 실험적 방법 중 하나로 색면 회화의 캔버스 방식을 활용한 작품이다. 이전의 작품들에서 보이는 두꺼운 표면과 마티에르는 없애고 물감이 스며들고 번지는 효과를 주기 위해 바탕재로 면천을 사용했다. 기법적으로 발묵법과 유사한 이러한 행위와 점 하나하나를 찍고 테두리 선을 그려 하나의 개체이자 전체의 군집으로 표현한 점은 우주적인 근본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이 작품은 시인 김광섭의 <저녁에>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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